KOFICE NEWS

[인터뷰] 국제콘퍼런스 참여한 4개국 방송작가

등록일 2006-06-16 조회 8720

노희경ㆍ양샤오숑ㆍ나카조노 미호ㆍ차이차오위 "상투성 못 벗어나면 아시아 드라마 죽는다"

(부산=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동아시아의 유명 드라마 작가가 대규모로 처음 한자리에 모인 것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당사자들도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 자체에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15일부터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시아 방송작가 콘퍼런스를 찾은 60여 명의 한국ㆍ중국ㆍ일본ㆍ대만ㆍ홍콩의 드라마 작가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격의 없이 서로의 작품을 놓고 토론을 했다. 각국 드라마 제작 현실과 동아시아 문화에 대해서도 즐겁게 의견을 나눴다.

16일까지 양일간 각국을 대표해 상영된 네 드라마의 작가를 한꺼번에 만나 각자의 생각을 들어봤다. '유행가가 되리'의 노희경, 중국 '경화연운'의 양샤오숑, 일본 '야마토 나데시코'의 나카조노 미호, 대만 '판관 포청천'의 차이차오위 등이 주인공이다. 이하 일문일답.

--한국 등 다른 나라의 드라마를 본 경험과 감상을 소개해달라.

▲차이차오위(이하 차이) = '겨울연가'와 '유리구두'가 인상 깊다. '겨울연가'에서는 대만에서 찍을 수 없는 아름다운 배경이 나온다. 대만에서는 한국처럼 정부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 그런 배경을 찍기가 쉽지 않다. '유리구두'는 가족 사랑이라는 주제가 대만 사람에게 와 닿은 것 같다. 대만에도 한국과 비슷한 드라마가 많지만 그처럼 꾸며내지는 못한다.

▲나카조노 미호(이하 나카조노) = '겨울연가'를 모두 봤다. 일본에서는 엄마 세대들이 이 드라마에 빠져 있다. 일본은 테크닉이 지나치고 소재가 자극적이다. '겨울연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일본 사람들이 반했다. '겨울연가' 때문에 일본의 제작진들도 일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감동이 컸다. 일본에서는 젊은 층 위주로 드라마를 제작하다 보니 그처럼 순수하고 차분하면 기획 자체가 되기 어렵다. 이런 자극을 안고 돌아가서 노작가의 스타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

내 작품이 원작인 '요조숙녀'도 봤다. 그런데 여자 캐릭터의 설정이 바뀌었다. 원래 악역에 치우쳐야 하는데 너무 착하게 그렸다. 일본에서는 여주인공이 악역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된 바 있다.

▲노희경(이하 노) = 대만 '판관 포청천'과 일본 '뉴스의 여자' 등을 봤다. 대만은 스토리의 탄탄함이 돋보인다. '뉴스의 여자'는 섬세해서 영상소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작품을 집중해서 보는 일본 시청자가 대단하다.

▲양샤오숑(이하 양) = '명성황후' '대장금' '유리구두' 등을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명성황후'를 좋아한다. 갑오경장 등의 사건을 중국이 아닌 한국의 시각으로 다룬 것이 재미있었다.

중국에서는 드라마의 예쁜 여자는 황후가 되기를 바라고 권력싸움을 다룬 스토리에 휘말린다. 하지만 '대장금'은 예쁜 여자가 기술직으로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모습을 담았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각국 드라마 속 남녀 캐릭터의 차이는.

▲노 = 사실 각국이 모두 비슷해졌다. 우리나라 대다수 트렌디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를 뽑아 썼다는 지적을 받는다. 자기중심적이고 반항적인 캐릭터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나카조노 = '겨울연가'의 배용준은 오로지 한 여자만을 위한다. 일본에는 거의 없는 캐릭터다. 순수한 최지우 캐릭터도 일본에는 없다. 일본 여자들은 최지우를 통해 자신의 순수한 시절을 떠올리는 것 같다.

▲차이 = 대만은 작가가 캐릭터를 만들기 힘들다. 감독이 바꾸라면 바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의 개선점은.

▲노 =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시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한국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을 지금처럼 계속 담고, 일본 드라마는 반항적인 캐릭터, 중국은 계승의 문제만을 고집하면 아시아 드라마 자체가 죽어버릴 수 있다.

한류는 꺾이고 있다. 그래도 완전히 외면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기존 작품과 차별화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 드라마를 베끼고 제작환경도 열악한 상황에서 중국의 앞선 제작 시스템이 들어오면 우리 드라마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나카조노 = 일본도 30년 전에는 출생의 비밀 등을 많이 다뤘다. 흥미 때문에 드라마에 기복을 많이 줬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은 후 요즘은 사람의 심층을 파고드는 쪽으로 가고 있다.

--각국 드라마 제작 상황의 변화 양상은.

▲노 = 우리는 지금 스토리에서 캐릭터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인데 배우가 주문한 드라마를 쓰는 상황도 종종 생긴다. 배우가 원하는 대로 드라마가 움직이는데 그것은 좋지 않다. 배우 중심의 드라마 제작사가 많아져서 작가의 권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시청자가 외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사전제작제와 지금 형태의 드라마 제작방식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5부작이나 10부작을 만들어 방송한 후 반응이 좋으면 또 만드는 식으로 가야할 것 같다.

▲나카조노 = 일본에서도 집필 때 시간에 많이 쫓긴다. 미국처럼 집단 작가 시스템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경우 러브스토리 부분 등 세부 분야별로 나눠 쓰기도 한다.

▲차이 = 대만은 작가의 전투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경쟁이 정말 치열하다. 3일 동안 잠을 못 자고 극본을 쓴 적이 있다. 정치 사회적 소재는 잘 안 다룬다. 다른 것도 있는데 왜 하필 그런 소재를 쓰는가.

▲양 = 중국은 촬영을 끝내고 심사를 거쳐야 방송을 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시청자 반응에 따라 스토리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오쩌둥 등을 다른 경우에는 심사가 심하지만 다른 소재는 별로 심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