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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관광, 제주도 '다크투어'

등록일 2019-06-09 조회 187


<제주다크투어는 독재 정치의 만행을 기억한다>

 

다크 투어리즘(어두운 관광)은 어두운 과거의 흔적을 찾는 관광으로, 집단 학살, 살인, 원전 사고로 인한 환경 오염 등 암울한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를 방문하는 관광이 주를 이룬다. 아우슈비츠, 루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이 그 대표적인 장소들로 떠오르는데 한국의 제주도도 이 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동안 관광지로서 한국에 주목해 제주도를 이미 소개한바 있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지는 '대한민국에 있는 어떤 섬이 강요된 침묵의 70년이 지나서야 학살 사건에 대해 배우도록 관광객들을 초대하고 있다'란 제목의 제주도 다크투어에 관한 소식을 지난 62일 보도했다. 제주다크투어(jejudarktours.org)라는 이미 웹사이트가 이미 존재할 만큼 한국에서는 제주 4.3사건을 기리는 작업이 활발한데 제주도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역사를 알게 되는 새로운 기회가 될듯하다.

 

인디펜던트지는 제주도로의 '어두운 여행'(Dark tours)이 문재인 대통령 정권에서는 독재 정치의 만행을 재고해보려는 자유의 행보가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제주 4.3 항쟁으로 잘 알려진 이 혼란기에 군인들은 평온한 마을을 습격하여 집들에 불을 붙였고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으로 소집하였으며, 모여든 군중 속에서 군인과 경찰의 가족들과 친척들을 색출한 뒤 남아있는 사람들을 남성들과 여성들, 어린이들로 분류하여 30명에서 50여 명으로 나누어 끌고 가 사살했다. 제주도의 북촌에서 1949117일 대량 학살이 끝난 후 300여 구의 시체들은 전통적인 하얀 옷을 입은 채 근처에 있는 논밭으로 던져졌는데 이 광경은 마치 '갓 다듬은 무우들 같았다'고 한 생존자는 기억했다.

 

이로부터 70년이 지난 후 한 관광 그룹은 그날 살해당한 어린 아이들의 작은 무덤을 보려고 북촌에 도착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숱하게 자행되었던 제주도에서는 그동안 이러한 사실들이 엄격한 비밀과 침묵에 붙여졌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작금에서야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흉측한 장 중의 하나인 이 제주 항쟁 관련 사태들을 직접 보고 배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져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지는 관광객들이 어두운 제주도의 역사를 몸소 고통스럽게 체험하는 동안 79세의 고완순 씨와 같은 생존자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며 그녀와의 인터뷰 내용을 직접 소개했다. “내 아기 동생이 업힌 엄마의 등 뒤에서 소리치고 우니까 군인들이 그 아이의 머리를 두꺼운 곤봉으로 두 번이나 때렸다고 한다. 고 씨는 아직도 그날 북촌의 학교 운동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런 일을 말할 수 있으니 좋다고 밝혔다.

 

이른바 '어두운 관광'이 공식화된 문재인 대통령 정권하에서는 대한민국이 독재 치하에 있을 때 자행되었던 만행들과 당사자들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증가했다고 볼 수 있지만 수십 년 동안 1947년과 1954년 사이에 제주도의 북촌과 근처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유롭게 말할 수가 없었다. 생존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의 제주도는 인간 도살장과 같았다고 한다. 이 섬의 인구 중 10분의 1 정도가 되는 30,000여 명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극좌 반역자들'로 간주되어 처형되었고, 그들의 일가친척들 또한 색출되어 경찰과 군인들,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전후 번영기에 제주도에는 기념관과 역사박물관 대신에 골프장들과 리조트 호텔들이 들어섰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최고 관광지가 되어 수백만 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왔고, 이 섬의 북쪽에 있는 북촌 부근 바닷가의 아름다움과 토속문화에 매료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공 노선 중의 하나가 된 제주도>

 

그런데 그동안 오래된 바람으로 꼬부라진 팽나무, 옥처럼 푸른 바닷물, 전복과 오징어를 잡는 해녀들이 제주도의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이제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고 한다. 본토에서 와서 북촌을 찾은 교사 이항란(32) 씨에 따르면 '제주도는 더이상 내가 알던 관광지가 아니다'.

 

제주도의 역사는 한국현대사의 고통스런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한민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한으로 분단된 후 1947년 봄 초에 제주 주민들의 일부는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경찰의 잔인함에 저항하고 통일된 한국을 요청하며 들고 일어섰다. 본토에서 온 '우파' 의원들이 합세한 경찰과 군인들, 토벌대는 이 항쟁에 동참한 이들을 '반란자들', '공산주의 선동가들'이라 부르며 이들의 행위를 단죄하는 근절 캠페인으로 대처했다. 제주도민들은 이에 저항했고 경찰서들을 점령하였지만 대부분 농민들이 주류였고 수적으로도 열세인 데다가 무장이 안 되었던 바람에 곧 무너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그들 친척들의 대부분과 동조자로 간주된 주민들 대다수가 살해되었다. 이 기간동안 수많은 항쟁 참가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섬에 있는 동굴들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다크투어 동안 방문객들은 스마트 폰으로 불을 켜가며 이 동굴들을 몸소 체험한다. 당시 사용되었던 물품들의 흔적이 아직도 가끔 발견된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북촌에서 수백 명의 주민들, 대다수가 1950년 초 한국 전쟁의 발발을 막으려던 항쟁 참가자들이거나 좌파 성향을 가진 일가친척들 수백여 명이 묻혀있는 대형 무덤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이 대개 시체들을 뒤처리가 쉬운 곳이나 바닷가, 폭포 등에서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정부 세력들과 준군사조직 폭력배들에 의해 자행된 잔인한 이야기들은 주민들 사이에서 공포와 앙심을 동반한 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여성들을 성폭력하고 친척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 박수칠 것을 요구받았던 것 등이 그 예들이다. 토벌대가 어떤 어머니로 하여금 반란군 아들의 절단된 머리를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도록 강요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2000년에야 비로소 이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공산주의를 근절한다는 명목하에 죄 없는 마을 주민들에게 가한 인권 유린을 사죄했다. 2008년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대규모 제주 '평화 공원'을 오픈했다.

 


<다크 투어의 표본 아우슈비츠>

 

정부가 설립한 박물관에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만행의 규모를 느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검은 대리석으로 된 벽에 어린이들의 이름을 포함한 수천 개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정부는 현재 그 책임을 인정했지만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수십 년 동안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모든 불이익을 당한 채 살아야 했고, 그들이 목격한 이 사건이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정치적 감시 기구의 통제를 당하며 살아야 했다.

 

역사가 발전해 현재 이 사건이 자유로운 토론의 대상이 되었지만 많은 섬 주인들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또 언제 그들이 '빨갱이', '역적'으로 몰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전히 보수 단체들은 제주도민들의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구 출신 장수경(48) 씨의 발언을 인용한 인디팬던트지는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가 자유롭게 이런 사건들을 이야기할 수 있기 바란다'고 밝혔다.

 

제주도민들에게 역사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어떤 경찰의 친척들은 반란군의 친척들과 혼사를 맺기도 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그들의 조상들이 연루되었던 복잡한 사연들을 생존자들을 통해 듣게된 경우들도 많다. 모두가 한 마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이고 괴롭혔으며 어떤 편에 가담했었던지를 당시의 생존자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손들에게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고 정권이 바뀌면 또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 쉬쉬하는 이들도 많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비교적 선입견으로 자유롭게 그 당시의 사건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며 인디펜던트지는 27세의 제주 주민인 김명지 씨의 입장을 인용했다. 자신의 고조부가 정부군에 의해 살해당했지만 이 가족사를 숨기기보다 이 과거를 공개하는 다크투어 중 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김 씨는 고조부의 인생과 그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를 기록하고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고 싶다고 한다.

 

2012년에 제작되어 미국 선댄스 영화제와 프랑스의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등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과 찬사를 받은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이 생각난다. 문화 예술의 소프트파워가 새삼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정치인들과 역사가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희생자 개개인들에게 남겨진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으며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억지로라도' 기억을 시키는 일은 문화 예술 분야에서 탁월하게 성취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Independent(19. 6. 1.) <South Korean island invites tourists to learn about massacre after 70 years of enforced silence>, https://www.independent.co.uk/news/world/asia/south-korea-jeju-island-massacre-dark-tourism-bukchon-a89398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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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이현선[영국/런던]
  • 약력 : 현)SOAS, University of London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