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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의 한인배우 오순택…. 별이 지다.

등록일 2018-04-12 조회 471

할리웃을 무대로 활동해왔던, 할리웃 1세대 한인 배우 오순택(Soon-Tek Oh)씨가 지난 4월 4일(수) LA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였던 그는 그동안 알츠하이머로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어쩌면 그의 이름에서 별 의미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 특히 영어로 된 엔터테인먼트 소식을 꾸준히 읽어왔던 이들이라면 주류사회에서의 그의 존재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이다. 한국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성장기를 한국에서 보낸다. 연세대학교 정치학과를 마친 1959년에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고 UCLA를 다녔다. 그 후 뉴욕의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Neighborhood Playhouse)>를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UCLA 대학원에서 연기분야 최고학위인 연기 및 극작 석사학위(MFA)를 받고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데뷔작은 1965년, 브로드웨이의 연극 <라쇼몽>. 이후 30여 년간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 예술, 영화와 TV 시리즈물, 총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아시안 배우로서의 이력을 쌓았다. 대표작을 살펴보자면 1998년, 디즈니의 만화 영화 <뮬란(Mulan)> 1편에, 그리고2004년에는 2편에서 뮬란의 아버지 파 자우(FaZhou)의 목소리를 연기한 것을 들 수 있다. 1974년에 개봉됐던 007 시리즈 초창기 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에서는 로저 무어(RodgerMoore)와 함께 출연했었다. 그가 맡았던 역할은 홍콩 주재 영국 정보원 역. 출연 직전, 에이전트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제 에이전트가 저더러 제임스 본드의 영화에 출연할 의사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엔 좀 대담했었어요. 그래서 에이전트에게 이렇게 말했죠. ‘나는 세탁업자, 정원사 등의 역할은 절대 하지 않아.’라고요.”

 

당시만 하더라도 아시안들에게 맡겨진 배역은 그의 말대로 세탁업자, 정원사 등 아시안 이민자들이 미국에 와서 했었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들이었다. 그 자신 역시 할리웃에서 홍콩 주재 영국 정보원이라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대특명2(Missingin Action 2: The Beginning)>에서 척 노리스(Chuck Norris)를 상대로 명 액션 장면을 펼치기도 했었다. TV 시리즈물로는 <하와이 파이브오(HawaiiFive-O>에 8회, <매쉬(M*A*S*H)>에 5회, <매그넘 피아이(Magnum P.I.)에 총 4회 출연했다. 그는 1976년, 미국 뮤지컬의 메카인 브로드웨이에서 스테판 손드하임(Stephan Sondheim)의 뮤지컬, <태평양 서곡(PacificOvertures)>에도 출연한 바 있다. 스테판 손드하임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함께 뮤지컬계의 두 거성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할리웃에서 또는 영어로 제작된 영화에서 아시아인의 외모를 가지고 ‘대사(Lines)가 있는 배역’을 따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이야 한국 영화가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어 한국 감독에게 할리웃 영화의 연출이 맡겨지기도 하고 한국 배우가 주연을 맡아 출연하는 경우도 있지만 1970년대로부터 2010년도에 이르기까지, 이는 ‘가문의 영광’이요, ‘국위의 대대적인 선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렇다. 배우 오순택은 이처럼 아시아 배우들이 배역을 따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할리웃 영화에 출연했고 주목을 받았으며, ‘배우(Actor)’로서의 쉽지 않은 삶을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냈던 예술가이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전문 잡지인 《버라이어티(Variety)》지에서는 지난 4월 7일자로 오순택씨의 별세 소식을 다루었다. 렛 바트릿(RhettBartlett) 기자는 고 오순택씨가 얼마나 할리웃에 자신의 뿌리인,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아이덴터티를 남기고 기여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비교적 아시아 이민자의 인구밀도가 높은 LA에는 ‘이스트 웨스트 플레이어즈(East West Players)’라는 아시아계 배우들의 연합 조직이 있다. 《버라이어티》지의 기사를 통해 비로소 그가 1965년, 이 단체를 공동으로 설립한 장본인임을 알게 되었다.

 

1992년 LA 폭동이 일어난 후에 그는 대중매체가 아시아인들을 고정된 이미지로 그리는 것에 맞섰고, 미국 내 아시아인들의 목소리를 높여보겠다는 희망으로 <헤리티지 퍼포머 소사이어티(launched the Society of Heritage Performers)>를 시작했다. 이 단체는 1999년 ‘로드스톤 극장 앙상블(Lodestone Theatre Ensemble)’로 바뀌었다가 약 10년 후 유명무실해졌다. 고인과 함께 할리웃에서 연기 생활을 했던 한인 배우 칠 공(Chil Kong)씨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고인은 공동체의 리더로서 마치 친부모처럼 저를 예술가로 키워주었습니다. 그가 제게 베풀어준 것에 대해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선생님이 평생 동안 하신 것처럼 제 자신의 예술적 자아에 대해 진실한 자세로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수밖에요.”

 

<스타트렉(Startrek)>에 출연했던 다문화 배경의 배우 팀 로니보스(TimLounibos)는 고인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인 커뮤니티와 다문화에 대해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정도의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저의 코치이자 멘토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통해 삶의 가르침을 주시기도 했죠.”

 

그는 할리웃에서 오순택(Soon-Tek Oh)라는 이름을 있는 그대로 ‘공연자 이름(Stage Name)’으로 사용했다. 발음하기 어렵다는 할리웃 사람들의 커멘트를 들으면서도 한국인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는 한국의 연기자 후배들을 키워내기 위해 한국 대학에서 초빙교수와 석좌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1973년부터 1년간은 서울예술전문대학과 서라벌예대에서 가르쳤고 2000년대 초반에는 서라벌예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그리고 2005년부터는 서울예대의 석좌교수로 재직했었다.

 

미국 현지인들에게도 할리웃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고 오순택씨는 자신이 할리웃에서 몸으로 체화한 노하우를 한국의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실제 체험에서 우러난 말과 가르침은 진실하다. 별이 지면서 이제 전설이 된 오순택…. '할리웃에서 동양인 배우로 생활한다는 것이 마치 “산에서 고래를 찾고 바다에서 호랑이를 찾는 것과 같다'는 그의 고백은 후배들에게 배우라는 직업의 화려함 이면의 디디고 올라가야 할 실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듯하다. 그의 장례식은 4월 14일 LA에서 치러진다.

 

기사 링크
https://www.hollywoodreporter.com/news/soon-tek-oh-dead-mulan-man-with-the-golden-gun-actor-was-85-1100765

 

<사진 설명: Soon-Tek Oh (right) and Chuck Norris in 1985's 'Missingin Action 2: The Beginning' - 사진 출처 : MGM/Photof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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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박지윤[미국(LA)/LA]
  • 약력 : 현재) TAN-TV '진짜메리카' 진행자.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TMF 과정 이수중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라디오코리아 진행자,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