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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까지 박물관 앞 긴 줄이 서는 까닭, '박물관의 밤' 행사의 날

등록일 2017-05-16 조회 183

깜깜한 밤, 버스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디론가 향한다. 그리고 그 버스에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선다. 버스는 이들을 싣고 금새 사라진다. 밤 12시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이 버스는 '무제움나흑트(Museumnacht)', 독일 라이프치히와 할레에서 열리는 '박물관의 밤' 행사를 위한 특별 노선이다. '박물관의 밤'은 라이프치히의 모든 박물관이 밤 12시까지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행사다. 1년에 딱 하루 열린다. 라이프치히뿐만 아니라 근교 도시인 할레도 함께 개최하는데, 티겟 한 장으로 이 도시의 모든 박물관과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다. 비용적 측면뿐 아니라 늦은 밤까지 불켜진 박물관을 방문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라 많은 시민들이 찾는 행사다.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의 밤' 행사 팜플릿과 밤까지 운행하는 야간 노선>

 

박물관은 사실 어디 여행간 곳에서는 관심있게 볼지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박물관을 찾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통신원도 태어나 자란 도시에서 학교 견학을 빼고 '자발적으로' 도시의 박물관을 찾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라이프치히에 산 지도 3년이 지났지만 주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언젠가는 가겠지'하며 매번 방문을 미루곤 했다. 라이프치히시는 하지만 이 행사를 통해서 시민들을 박물관으로 끌어들이고, 도시를 사랑할 기회를 준다.

 

지난 5월 6일 토요일 저녁 6시, '박물관의 밤'이 시작됐다. 라이프치히 시립 박물관, 현대미술관, 동독 슈타지 박물관, 전쟁기념탑 등 대표적인 관광명소부터 동독 학교 박물관, 동독 사형집행장, 라이프치히 강제노동 추념관 등 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교육적인 장소, 바흐 박물관, 멘델스존 하우스 등 음악사 관련 장소 등 80여개의 장소가 12시까지 문을 연다. 시간대별로 음악 공연, 명사 초청, 가이드 투어 등이 제공되기도 한다.

 

밤 12시까지라 꽤 시간이 많아보이지만 전략을 잘 짜야한다. 특히 유명한 예술가인 야데가 아시시의 파노라마 타이타닉 전시관과 일년에 2번 문을 여는 동독 사형집행장 등 인기 장소는 시작 시간에 맞춰 미리 가는 게 좋다. 아니면 긴 줄 뒤에서 1시간 이상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근교 도시 할레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 시내 박물관 두 곳과 이 날만 문을 여는 동독 사형집행장, 그리고 전쟁기념관을 가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내에 있는 도시역사박물관이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몇 유로 하는 입장료에 '여기 사는 게 역사지 뭐, 됐어' 하며 뒤돌아서기 일쑤였다.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햇볕을 받아 꽤나 아름다웠던 박물관 내부가 인상적이었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 놀라웠다. 인기 장소야 그렇다치고 시내에 있는 여타 박물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 바로 옆에 있는 시립 박물관에서는 라이프치히의 과거 사진을 보여주는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흑백 사진에 색을 입혀 더욱 생생하게 도시의 과거를 찾을 수 있었다.

 

   

<라이프치히 도시역사박물관(왼쪽)과 동독시절 사형 집행장(오른쪽)을 찾은 방문객들>

 

동독의 중앙 사형집행장이었던 곳은 그당시시설이 그대로 있는데, 건물이 너무 낡아 평소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1년에 2번, 박물관의 밤과 문화재의 날에만 문을 연다. 그래서 이곳은 필수 코스로 꼽히는데 좀 늦은 탓에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사실 낡은 건물 내부와 사형이 집행된 텅 빈 방 하나만 볼 수 있어서 기대만큼 느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곳을 나오자 밖이 깜깜하다. 진짜 '박물관의 밤'이 되었다.

 

마지막 코스는 라이프치히 전쟁 기념관이다. 기념물 중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다. 낮에는 몇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밤에 오긴 처음이다. 기념탑을 밝힌 불빛과 달빛이 어우러져 순간 낭만적인 분위기에 빠진다. (기념탑의 내용은 물론 둘째치고 말이다) 기념탑을 한바퀴 돌고 기념탑 꼭대기에서 라이프치히 야경까지 바라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마지막 코스로는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라이프치히 전쟁 기념탑 전경. 야경을 보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은 방문객들이 많다>

 

올해 박물관의 밤 행사에는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가했다. 한 사람당 10유로, 학생 할인 8유로. 라이프치히 시정부는 근교 도시 할레와의 협력을 통해서 훌륭한 문화 행사를 9년째 이어가고 있다. 라이프치히와 할레 시민들은 이 행사를 통해서 자신이 사는 도시 곳곳을 더 깊숙히 알 수 있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들은 물론 학생들, 특히 온 가족이 총출동한 경우도 많다. 여러 박물관들이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이 밤, 박물관의 밤 팜플릿을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또 다른 참가자를 마주치거나, '박물관의 밤'이라고 적힌 버스를 다함께 타고 가면서 묘한 동질감과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해질녘,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도시를 걷다보면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도시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다. 박물관의 밤은 내가 사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즐거운 밤이다.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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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이유진[독일/라이프치히]
  • 약력 : 현)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재학중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