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대통령과 한류, 창의성 · 다양성이 시작이다

등록일 2017-05-08 조회 615

5월 9일 장미 대선을 앞두고 문화계 안팎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 정권에서 불거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체육교육계 비리에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한류시장 위축 등 워낙 현안들이 많은 탓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문화 관련 다양한 정책들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블랙리스트 파문이 워낙 거센 탓에 독립성을 강조하는 약속이 많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문화예술인들의 정신·경제·사회적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관련 주요 기관의 독립성 보장, 문화예술진흥기금 재원 확보 등을 공약했다. 주요 기관의 독립성·자율성·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문화예술인·영화인·출판인들의 추천으로 기관장을 선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화예술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을 발굴해 지원하는 체계 마련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블랙리스트 재발을 제도적인 장치로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후보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와 문화행정혁신위원회 등을 문화예술계와 함께 구성해 가동하겠다고 공약했다. 문화예술계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옴부즈만위원회 제도를 운영하고 문화예술 공정화에 관한 특별법 제정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문화예술인 기본 소득제를 검토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현재의 한국콘텐츠진흥원 중심 체제가 아닌 음악·영화·애니메이션·게임·방송·광고·출판 등 각 콘텐츠의 특성을 살린 지원책을 마련하고 분야별 진흥원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민간의 자율성과 독립을 위해 재정 지원 주체인 정부와 해당 재원을 활용해 사업을 추진하는 시행기관과 단체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기술적으로 좌파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차이점을 드러냈다. 


각 대선 후보들은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입장은 갈리지만 한류 콘텐츠를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 후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적 팽창에 치우친 문화산업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영화·방송영상물, 출판·웹툰, 캐릭터 등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하고 사용 정보의 투명한 공개 시스템을 만들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공정성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1인 창작과 중소제작사 위주의 투자와 융자를 넓힌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안 후보는 사드 배치가 한류 시장에 타격을 준 것은 교역 대상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문화산업구조의 미성숙 때문이라며 문화 콘텐츠의 핵심인 창의성과 다양성이 국제적 경쟁력을 키우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무간섭 원칙을 지킨다는 입장이다.

유 후보는 사드 배치 철회에 반대하면서도 현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다변화된 한류 콘텐츠 산업 전략을 구축한다는 생각이다. 

심 후보는 한류 콘텐츠 산업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사드 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중국과 동남아 일부 국가에 집중된 한류 시장을 세계 각국으로 확대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방향점은 비슷하다. 

일부 후보를 제외하고 각론에서 차이는 있지만 주요 대선 후보들은 문화 정책을 정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선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 자체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문화 정책은 DJ, 노무현 정부 시절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에서 MB정부의 ‘선택과 집중’을 거쳐 박근혜 정부의 ‘문화 융성’으로 바뀌어왔다. 이랬던 문화 정책 변천사가 다음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기조로 되돌아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중요한 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고, 어디까지 간섭하지 않는가’이다. 다음 정부가 한류를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간섭하지 않는가에 따라 위기의 한류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한류 지원 정책은 크게 국외와 국내로 나눌 수 있다. MB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한류의 해외 확산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했다. 한류가 단순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넘어 관광, 뷰티, 음식 등 여러 산업에 파생효과가 크다고 판단해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에 따라 해외 기관장들은 각국에 K-팝 공연 유치에 힘썼고, 수치상 성과에 목을 맸다. 외교관 고과에 한류 지원 점수를 매기면서, 대사관 관계자들이 K-팝 가수가 공항에 왔는지 여부를 직접 체크하는 웃지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 핵심인 K-스포츠, 미르 재단도 정부의 한류 지원 정책에서 기생했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공급자 중심의 정책이란 점이다. 대형 공연, 행사 유치, 정부 주도의 사업 등등은 한류를 정책적으로 공급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한류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다. 한류는 수요에서 비롯됐다. 한류란 한국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한 연예 콘텐츠를 뜻한다. 한국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 영화, 한국 가수가 부르는 노래, 춤 등에 각국의 수요자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해 생긴 결과물이다. 의도적으로 공급해서 형성된 문화현상이 아니다. 한류 콘텐츠가 각 산업과 연계돼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건, 우연의 산물이지 계획의 성과가 아니다. 

때문에 한류를 정책적으로 지원한다면, 공급 중심의 기존 방식에서 수요자 중심의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류를 국가에서 정책으로 공급한다는 기존 방침은 각 나라에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만 혐한류가 있는 게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 유력 일간지에서도 한류를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일종의 문화 제국주의로 비판하는 기사들이 여러 번 게재됐다. 정부가 한류를 지원하겠다며 북을 두드리며 나팔을 불수록 각 나라들에선 문화 침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문화 제국주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부의 공급 위주의 정책이 한류 확산에 영향을 줬냐면, 효과는 미비하다. 공급자 중심이다 보니 정부 발주 사업을 따내려는 이해 당사자들에게 영향을 줬을 뿐이다. K스포츠, 미르 재단 역시 이런 공급 중심의 철학에서 비롯된 악성 종양이었다. 


다시 강조하자면, 한류는 수요에서 비롯됐다. 당연히 지원도 수요자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각국에서 한류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이어야 한다. 일본이 프랑스에 망가 페스티벌을 적극 지원하는 것처럼, 정부는 각국에서 한류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보의 지원이다. 현재 해외 각국에서 한류 콘텐츠에 대한 정보는 한류 팬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파되고 있다. 열혈팬들이 한국 연예인들의 동향과 소식을 발빠르게 번역하고 팬사이트에 경쟁적으로 올린다. 한국가요 소식, 한국영화 소식, 한국 드라마 소식도 마찬가지. 이런 정보 전달에 정부가 일조하는 건 거의 없다시피 한다. 각 해외 공관 홈페이지나 SNS 등에는 한류 관련한 사업 공고가 있을 뿐, 한류팬들이 원하는 한국 연예뉴스가 그 나라 말로 번역돼 소개되는 일은 없다. 그 나라말로 번역된 발 빠른 한국 연예뉴스의 전달은, 확산을 낳는다. 확산은 곧 영향력을 낳는다. 일본과 중국처럼 한류 뉴스 소비가 왕성한 나라들은, 민간 사업자가 한류 소식을 전한다. 반면 한류 뉴스 소비가 적은 곳은 자발적인 팬사이트 외에는 한류 소식을 제대로 접할 길이 없다. 해외 공관들이 한류 소식을 그 나라 언어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민간 사업자가 활발하지 않은 국가들에선 한류 콘텐츠를 현지어로 원활하게 번역할 수 있게 하는 지원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한류 해외 확산에 정부의 중요한 몫은 생산자 지원이다. 생산자 지원 핵심은 세재와 저작권이다. 세재 문제는 국내 정책과 맞물러 있는 만큼 뒤에서 논하고 저작권 문제부터 짚는다. 사실 한류 확산에 저작권 문제는 아이러니다. 각국에서 저작권을 철저하게 위반했기 때문에 한류가 확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기반으로 바뀌면서 그간 아시아 중심이었던 한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저작권을 위반하며 무단으로 퍼졌다. 법적인 제재가 없었기에 한류가 세계 곳곳에 퍼질 수 있었다. 유럽 각국, 남미 각지에서 한국 드라마와 한국 노래를, 한국과 시차 없이 즐긴다는 건, 그 만큼 빨리 한류팬들에 의해 불법적이며 경쟁적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퍼졌기에 저작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모처럼 지펴진 한류 열기가 사그러들 수 있다. 그렇다고 내버려두자니 한류 생산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없다. 해외에서 한류 열기가 뜨겁다한들 한류 생산자들에게 그 열매가 돌아가지 않는 한, 그 열기는 지속될 수 없다. 이런 점은 지난 2014년 워너브라더스 등 미국드라마 제작자들이 한국 불법 자막 번역자들을 일제히 소송한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열매가 익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소송을 한 것이다. 한류 콘텐츠 불법 유통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지속적인 모니터와 함께 합법으로 유도하는 게 정부의 몫이다. 미국의 한류 콘텐츠 유통사인 비키도 이런 과정으로 불법에서 합법으로 전환했다. 아울러 각 나라에서 한류 콘텐츠가 어느 정도 경제성을 갖고 있는지, 기존의 시청률 조사 방식이 아닌 사이트 도달률과 클릭수 등 영세한 민간 사업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정부가 체계적으로 수집해 제공해야 한다. 민간의 몫은 민간에게 맡기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지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한류란 한국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다. 화장품이나 관광 등 다른 산업과 연계는 파생된 것일 뿐이다. 때문에 한류의 국내 정책이란, 곧 한국 대중문화 산업 육성 정책이다. 3~4년 사이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화두는 수직계열화였다. 대기업이 제작부터 유통까지 모두 하는 데 대해 중소 사업자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CJ E&M이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했고, KBS는 제작사 몬스터유니온을 세웠다. 이를 두고 중소 드라마제작사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영화산업에선 수직계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결을 바탕으로 배급과 극장업을 겸업할 수 없는 법제도 공론화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안철수 의원과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파라마운트 판결을 모태로 한 영비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문제는 이런 규제는 각각의 산업을 육성시키기 보다는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류 콘텐츠의 핵심인 드라마는 갈수록 제작비가 늘고 있다. 이런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는 제작사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올초 한국을 넘어 아시아 각국에서 히트한 <도깨비>는 스튜디오드래곤 제작이다. 지난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강타한 <태양의 후예>는 영화투자배급사 NEW가 만들었다. 수직계열화를 막겠다고 섣불리 규제법안을 꺼내들었다간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영화도 사정은 비슷하다.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될 경우, 한국영화 투자가 위축돼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기 십상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 및 영화 규제들은 파라마운트 판결과 핀신규칙, 주시청시간대 접근규칙이다. 스튜디오와 극장을 분리했던 파라마운트 판결은 이미 사문화됐으며, 지상파 방송국의 기득권을 제한하기 위해 프로그램 중 상당수를 독립제작사에 만들게 했던 핀신규칙은 시청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특정 집단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하게 된다는 이유로 1995년 폐지됐다. 지상파 방송사에 프라임 타임 중 적어도 3시간을 독립 프로덕션을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는 주시청시간대 접근규칙도 효과가 미비해 1996년 없어졌다. 미국은 규제 법안 대신 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세금혜택과 지원금 보조, 융자지원 등을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같이 시행한다.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모범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는, 규제 대신 지원 정책을 쓴다. 조건을 충족한 영화의 경우 관객이 일정 수준 이하로 들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한다. 시장 논리와 정부 지원이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또 프랑스는 다양한 재정지원과 세제 혜택을 병행한다. 해외수출에 필수적인 자막, 더빙, 포맷, 브로슈어 제작을 지원한다.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중 요건이 충족하면 제작비의 30%를 세금에서 공제한다. 이런 다양한 지원이 문화 산업의 기반 역할을 한다. 


한국의 실정은 다르다. 한류 콘텐츠는 외국납부세액 공제조차 받을 수 없는 일이 허다하다. 제작비 세금 공제는 언감생심이다. 한류 콘텐츠 생산자를 위한 지원보다는 규제가 더 많다.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 값 싼 극장요금은 물가 억제 정책으로 묶여있다. 

포스트 한류로 꼽히는 엔터테인먼트 지적재산권 지원도 미비하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인 '엔터테인먼트 지적재산권 마켓'( Entertainment Intellectual Property Market, E-IP 마켓)은 사드 여파에도 중국 바이어들의 관심이 상당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이 줄면서 실무진 상당수가 최근 그만둬야 했다. 애초 엔터테인먼트 지적재산권 마켓도 영화계에서 십시일반으로 지원해 꾸려졌다. 

차기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어떻게 간섭하지 않아야 할지, 어디까지 간섭해야 할지, 디테일을 명징하게 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렇기 위해선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취합해야 한다. 


문화 블랙리스트가 드리운 그림자는 짙다. 블랙리스트는 직접적인 불이익 뿐 아니라 간접적인 검열 역할도 했다. 런던한국영화제에 <변호인>이 상영하려다가 직전에 취소된 일이 벌어졌다. 정부 기금이 들어간 영화 모태펀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라는 이유로 투자를 돌연 취소하는 일을 벌였다. 비단 원전 폭발을 다룬 <판도라> 뿐 아니다. 완장 찬 사람들이 도처에서 횡횡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라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 상영 이후 아직까지 정상화되지 못했다. 


차기 정부는, 곳곳에 똬리를 튼 블랙리스트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한편, 그 자체가 또 다른 완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완장 찬 사람들이 설치는 한, 자율성과 독립성, 그것에서 비롯되는 창의성은 발목이 잡히기 마련이다. 한류의 시작은 창의성이라는 점, 다음 정부의 핵심 기조여야 한다고 믿는다. 




※ 이 기사는 웹진 <한류스토리> 5월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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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전형화
  • 약력 : 머니투데이 기자